• [단상]‘캠브리지’의 신화창조, 의류업계 원로 故(고) 金三錫 회장
  • [2013-05-11]
  • 이상일 기자, sileetex@hanmail.net
원로 패션경영인인 前 ㈜캠브리지멤버스 김삼석(金三錫) 회장이 지난 3월 14일 향년 86세로 美國 코네티컷주 병원에서 타계해 필자에게 큰 애환을 안겨줬다.
金三錫 회장을 당초 단상명부에 수록하지 않은것은 그가 ㈜캠브리지멤버스를 지난 2007년 코오롱FnC에 매각한 후 사실상 현업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타계를 계기로 김삼석 회장의 패션사업에 대한 열정과 패션史에 남긴 족적 등을 회고해 보기로 한다.
김삼석 회장은 1927년生으로 올해 나이 86세로 서울대 공대를 나와 캠브리지 전신인 ㈜삼풍섬유공업 창립을 거쳐 1995년 ㈜삼풍(현재의 캠브리지멤버스)으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신사복 수출 메이커로 일취월장 했다. 한창 성장기에는 미국 등지에 연간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출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내수부문에서도 ‘캠브리지’브랜드로 시장을 석권한데 이어 정통 브리티시스 스타일의 ‘아쿠아스큐텀’을 런칭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캠브리지 멤버스’ 는 국내 시장에서 중견브랜드로는 드물게 대기업 틈새에서 블루오션을 창출, 남성복 강자로 자리 잡았다.
국내 수출기업으로는 최초로 90년대초 중남미 코스타리카에 현지공장을 세우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선도해왔으나 당시 현지 근로자의 방화사건으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또 90년대 중반 멕시코시티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뚜에쁠라에 일화모직 등과 3사 컨소시엄을 통해 세계 최대의 신사정장공장을 운영하는 등 글로벌 CEO로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대부분의 국내 수출기업들은 스웨터나 니트 등이 주력 품목이었고, 신사정장류 수출은 거의 ㈜삼풍이 유일하다시피 주도해왔다. 당시 섬유·의류 전문지로서는 유일하게 멕시코 현장을 방문해 취재했던 필자로서는 그 시설과 웅장함을 대서 특필한바 있다. 또한 안양에 있던 ㈜삼풍공장은 당시 세계 최대의 신사복 공장으로 명망이 높았다.
현재의 역삼동 캠브리지 빌딩을 짓기전 서초동 예술의 전당부근의 캠브리지 빌딩에서 가끔식 접견을 해온 필자로서는 金회장의 타계는 애석한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단체인 한국섬유제품수출조합 이사장으로서 공인활동을 하던 그는 옛 서초 사옥 맨 윗층 회장실에서 필자와 가끔식 만나 온화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던 그의 얼굴이 생각난다.
당시 그의 회장 집무실은 서초 사옥 맨위에 자연 채광을 이용해 아주 근사했으며, 영국식의 아방가르드한 복고 분위기가 매혹적이던 기억이 절로 난다. 그래서 필자는 그를 아버지를 모시는 마음으로 존대하고 마음속으로 추앙해 왔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을 마친 외아들 김형권 상무가 경영에 역량을 다하지 못한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캠브리지멤버스는 2007년에 ㈜코오롱FnC에 전격 매각하는 수순을 밟았다.
1993년부터 94년까지 초대 한국의류산업협회회장을 역임한 그는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왔다. 2002년 강남 테헤란로 캠브리지 사옥 8개층과 현금 12억 등 102억원을 기증해 ‘캠브리지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김회장은 2007년 코오롱에 회사와 브랜드를 매각한 이후 미국을 오가며 자선사업에만 집중했다. 유족으로는 이선희(李善姬)여사와 외아들 형권(재미사업)씨가 있다.
‘캠브리지’ 신화를 창조한 한국의류업계의 원로인 정송(아호) 문화재단 金三錫 회장님의 타계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이 단상기록이 그를 추모하는 회고록이 되기를 기원한다.
평소 아버님 같이 자중자애하시던 故(고) 김삼석 회장님! 부디 편안하게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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