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팬코 최영주 회장,日本니트의류 시장의 선두개척자
  • [2013-04-14]
  • 이상일 기자, sileetex@hanmail.net
日本니트의류 시장의 선두개척자, ㈜팬코 최영주 회장
㈜팬코는 잘 알려진대로 對(대) 日本 의류 시장을 개척해 이분야에 최고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이 회사의 오너인 최영주 회장은 특히 일벌레로 소문난 CEO다. 筆者와는 성수동 소재 범한산업 출입시부터 거의 30년간 알고 지내온터인 그는 때론 일본에서, 때론 중국과 베트남에서 Buyer들과 상담하는 것이 일을 넘어 취미가 된 일상(日常)이 되고 있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동아대 경제학과를 나와 1965년 원림산업에 입사해 무역실무를 터득한 후 1975년 삼원산업을 설립,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1980년 범한산업으로 사명을 개칭한 후 본격적인 수출대열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對美수출은 물론 EU지역도 쿼터에 묶여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한번의 쓰디쓴 역경을 딛고 1984년 범한산업의 영문명인 팬코(팬코리아)로 다시 재기한 최회장은 그때부터 일본시장으로 눈을 돌려 요즘은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세계적인 스파(SPA) 브랜드인 ‘유니클로’와의 거래 관계를 형성하면서 ㈜팬코는 수직성장하는 등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례로 창업 당시 155만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실적이 1988년 2,100만 달러로 2천만 달러벽 돌파이후 2000년대 첫해에 5,000만 달러, 2008년 8,000만 달러를 거쳐 지난해엔 무려 1억 7천만 달러를 거양했다. 이러한 결과로 2010년엔 제47회 무역의 날에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팬코는 유니클로가 주력 바이어지만 현재 일본내 5대 의류소매기업인 유니클로, 시마무라, 월드, 이온, 무인양품(無印良品) 등 모두와 거래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시장을 천하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최영주 회장의 시장을 내다보는 정확한 통찰력과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쿼터가 없는 당시에 일본시장의 무한가능성을 예측한 것이 주효했다.
더욱 그가 경영의 신조로 삼는 ‘스피드’와 ‘신소재개발 및 R&D’는 ㈜팬코가 선두에 올라설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 최영주 회장은 ‘패스트 패션’에 따라잡기를 하기 위해선 빠른 트렌드를 읽고 스피드하게 반응하는 것을 경영의 신조로 삼고 있다. 이같은 초스피드로 바이어들 사이에선 ㈜팬코가 전 세계 의류 공급업체 중 가장 빠른 기업으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최영주 회장은 신소재 개발 및 대규모 시설 투자를 단행, 초일류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1995년 중국 칭따오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한 것을 비롯 베트남 호치민 부근에 거액의 달러를 들여 편직, 염색, 봉제 등을 수직 공정할 수 있는 버티컬 공장은 언론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팬코는 근래들어 구미시장은 물론 중국시장과 국내 내수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최회장은 중국을 값싼 인건비만 내세우는 생산기지가 아니라, 이제는 유력한 소비처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는데, 1995년에 공장을 지어 진출한 칭다오가 교두보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 ‘팬코-E&D’란 브랜드로 정식 출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팬코는 일본수출기업의 특성상 다품종소량생산을 강점으로 내수사업부문도 빠르게 커가고 있다. 내수부문에서 작년에만 4000만 달러의 매출을 거양했다. 이와함께 이태리 핸드백 명품인 ‘로베르타 디 까메리노’의 마스터 라이센스권을 확보하고 활발한 영업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연간 2억달러대의 대형 밴더로 급성장한 ㈜팬코는 지난해 12월 7일 강서구 등촌동에 10층 규모의 신사옥에서 창립 28주년 및 신사옥 입주식을 성대하게 가진바 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저녁 6시 30분쯤 감사의 인사말을 하는 과정에서 최영주 회장은 250여 임직원 및 협력업체 관계자가 보는 가운데 눈물을 보이는 애잔함을 보여 참석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회사설립후 쿼터가 없어 무진 고생 끝에 회사의 재설립, 84년 이후 서울 장한평과 삼성동 등 셋방살이를 거쳐 이뤄낸 28년만의 사옥마련은 그동안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다.
평소 筆者가 아주 가끔씩 그의 집무실로 방문하면 평소 매우 온화한 모습으로 반긴다. 그러나 일에 몰두할때는 카리스마적인 열정도 몸에 배여있다. 최영주 회장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비즈니스 방식은 소명의식 마저 느끼게 한다. 골프를 전혀 하지 않는 그는 대신 중국이나 베트남에가면 주로 현지 직원들과 식사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음악회나 운동회, 마라톤 대회를 열기도해 반응이 좋다. 이 모든 노력은 ‘현장과 소통하기’의 경영철학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중국이나 베트남 현지 공장설립 이후 지금껏 18년간 단한건의 노사분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공로로 현지 정부의 훈장을 수여받는 한편 2009년 9월엔 한-베트남 친선협회 회장에 피선되는 영광을 안기도.
최영주 회장이 골프를 안하는 이유는 골프칠 시간도 없으려니와 또 다른 이유는 일본 Buyer 때문이기도 하다. 비행거리라야 1~2시간 밖에 안되는 거리의 일본바이어들이 언제 어디때 들이 닥칠지 모르는 만큼 항상 ‘스탠바이’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현재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이사장으로서 봉직해온 그는 매주 해외로 출장을 가는 바쁜일정속에도 평소 국내 섬유산업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원로 경영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李相一 본지발행인>
<저작권자(c)패션리뷰. 무단전재-재배포금지.>